Untitled2 - 히페갈가
점점 낮은 곳으로, 그리고 천천히. 그림자는 소리 없이 바닥으로 발을 디뎠다. 발걸음은 곧장 십자가가 세워진 건물을 향해 갔다. 늦은 새벽이었으나 문은 열려있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듣는 이가 없어도 늘 열려있었다. 누군가가 진행해주지 않아도 익숙하다는 듯 하얗게 반짝이는 목걸이를 두 손에 쥐고 입을 열었다.
“오늘도 무고한 생명을 죽여 버렸습니다. 이 손으로, 이 그림자로. 피는 따뜻했지만 빠르게 식어버렸으며 그럴수록 제 심장은 빠르게 뛰었습니다.”
더듬더듬 말을 이어나가다 갈라지려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살덩이를 찢어냈을 때의 기억이 생경했다.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와 특유의 비린내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만들어냈다. 잔잔하던 물 표면의 파동은 계속해서 높낮이를 만들어내며 찰랑거리고 있었다. 아무 죄 없는 그들을 구원해주소서. 나를 용서해주소서. 나를 구원해주시옵소서. 아무도 없는 고해 실엔 남자 한 명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등이 들썩거릴 때마다 머리칼이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고비 같은 기분이었다. 기분 탓이라 믿고 싶었다. 아무리 자신이 위험했다 할지라도 칼을 뽑아드는 게 아니었다. 결국 그 칼끝이 자신의 목울대를 겨누게 되리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욱하는 성격이 문제였다. 억누르는 것과 다스리는 것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본인의 마음 하나 못 다스리면서 그림자의 왕이라니 우스운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바닥에서 한참을 웅크리고 나서야 그는 조심히 몸을 펼 수가 있었다. 어스름한 달빛이 나무 창틀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이대로 어딘가에 틀어박혀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은 채 며칠 동안은 조용히 홀로 지내고 싶었다. 성경이 됐든 무엇이 됐든, 불안정하게 흘러넘칠 듯 말 듯 한 물잔 속의 물을 조금은 비워낼 필요가 있었다. 물방울이 표면 장력을 깨뜨리기 위해 계속해서 톡 톡 두드리고 있었지만 아까처럼 파동이 크지 않은지 남자는 피범벅이 된 겉옷을 벗어내고 의자에 가만히 앉았다. 그림자에 먹혀들어 존재를 상실당하는 최악의 그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갈가마귀는 살고 싶었다.
죽음을 떠올리기 보단 삶을 그려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목걸이를 받아든 것이었고, 성경을 외우는 것이었고, 끊임없이 자기를 짓누르기 위해 고해해왔다. 시체를 보고서 금세 이성의 끈을 놓고 날뛸 뻔 했다니 다시 생각해보아도 반쯤 즉흥적으로 지어냈던 코드명인 까마귀다워 자조를 지어낼 수밖에 없었다. 한꺼번에 많은 감정이 스쳐지나가고 쏟아내서 그런지, 그는 지친 기색을 비쳤다.
고해 실 문을 열고 미사를 드리는 본당으로 나와 중앙까지 걸어 나갔다. 한 남자가 가시면류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어깨가 묵직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지 저 형틀을 짊어지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좀 더 진실로 당신을 믿으면 제가 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매달린 남자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묵묵부답이었다. 그에게는 대답이 필요했다. 믿음 하나만으로 기다리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하루라도 빨리 그 여자아이를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온지도 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발걸음을 옮기다 다다른 장소였지만, 본당 특유의 냄새를 맡아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오지 않게 되었는지. 아까의 그건 소홀히 했다는 것에 대한 벌 인걸까. 그러나 회개를 할 만큼 오래 머무를 처지는 아니었다. 피비린내가 조금이라도 빨리 지워지려면 그가 바삐 떠나는 게 우선이었다. 무엇보다도 조금 있으면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대가 끝나가고 있었으므로 그 전에 둥지로 돌아가야만 했었다. 그래야 덜미를 잡히지 않을 테니까.
“잘도 숨어들었군.”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숨었는데,”
등 뒤에서 불길한 위압감과 함께 겹쳐오기 시작했다.
“왜 하필 이런 곳이어야 했나.”
갈가마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를 지닌 존재를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얼마나 가깝고 멀리 있는지, 직감만으로는 그 거리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슬그머니 바닥에 심연을 드리웠을 때, 우악스러운 손길이 그의 팔뚝을 붙잡았다. 어찌나 세게 붙든 건지 입 밖으로 소리가 절로 튀어나갈 뻔했다. 그리고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뜨겁고 강렬한 태양빛에.
“이래서 새장 문을 열어주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지. 나는 네게 자유를 허락했지, 방종하라고 한 적은 없었다.”
---
트위터에서 리트윗된 횟수만큼 이어쓰기를 해서 쓰게 된 글.
시작은 갈사장님이었는데 어째서 끝은 히페갈가가 되었을꼬...
이래서 글은 막 쓰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