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2차
한밤중에 열리는 café - 히페갈가(+가브)
핑뀽
2015. 2. 20. 15:47
#rt당_스토리를_이어나간다
-현대AU
"새벽에 술 대신 커피를 찾는 이들이 있어 나는 늦은 시간에 첫 원두를 내립니다."
이런 시간에 카페가 열린다는 게 흥미로웠다. 24시간으로 운영하는 곳은 종종 가보았지만, 밤과 새벽을 위해 열리는 곳은 아마 히페리온 기억으론 처음이었으리라. 둘러보다 보니 아무 장식도 없는 하얗고 깨끗한 잔에 커피 향이 가득 나는 음료가 담겨 나왔다. 맛은, 자신 앞에서 묵묵히 일하는 바리스타의 첫인상과도 닮았다. 무겁지 않고 진하고 깊은 향이 깔끔한 뒷맛과 함께 목으로 넘어갔다. 히페리온은 곁눈질로 이름표를 살펴봤다. 헤르만 디히터. 나쁘진 않군. 이것은 커피와 만든 사람에 대한 평가였다.
"새벽에 열면 피곤하지 않나?"
"익숙해져서 괜찮습니다."
늦은 저녁 술 약속이 무산되는 바람에 그냥 들어가기는 뭔가 아쉬워 우연히 눈에 띈 곳에 왔더니 이런 곳이 다 있을 줄은 몰랐다. 히페리온은 뜻밖의 횡재라도 한 기분이었다. 밤을 담은 듯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카락, 햇빛을 보지 않은 듯 창백한 피부, 일을 위해 다듬어진 깨끗한 손톱. 문득 그가 바리스타가 아닌 바텐더였다 해도 제법 잘 어울렸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그러지."
가만히 감상하고 있다가 얼떨결에 대답해버린 히페리온은 액체가 따라진 컵을 입에 가져다 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도 별로 없고, 그 자신만이 헤르만과 제일 가까이에 있다. 이것은 기회였다. 히페리온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남자였다. 잔을 내려놓는 순간, 문에 걸어둔 종이 울리면서 누군가가 왔음을 알렸다. 남자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넥타이를 느슨히 풀어내며 익숙한 듯이 히페리온이 앉아있는 일자형 테이블로 가더니 냅다 앉아버렸다. 그리고는 히페리온을 슥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곤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들었다. 'I♥NY'라는 문구가 찍혀있었다.
"난 늘 마시던 거로 해주세요."
직감했다. 분홍 머리의 남자는 자신을 견제하고 있음이 분명했다.